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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산 김창숙 선생 동상이 수원에 있었네,
삼산 김창숙 선생 동상이 수원에 있었네,
  • 곽태섭수석기자
  • 승인 2023.04.17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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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김구‧윤봉길‧유관순‧신채호‧이회영‧김향화‧임면수‧최재형‧이상설‧이육사...

내가 존경하는 독립운동가들이다. 생가나 감옥, 의거 장소, 집무실 등 관련 유적지도 직접 방문했다.

필자,김우영,
필자,김우영,

 

<사진> 2015년 단재 신채호 선생이 갇혔던 중국 뤼순감옥 앞에 선 필자(사진/김우영)


안중근 선생이 순국하고 신채호 선생이 갇혔던 중국 뤼순감옥과,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가 일제의 압제를 피해 옮겨 다녔던 그 길도 따라 가보았다. 그 길에선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진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 들렀다. 김향화 지사가 만세를 불렀던 화성행궁 앞과 살림집이 있던 행궁동 일대, 임면수 선생의 무덤이 있던 삼일학교와 동상이 세워진 올림픽 공원은 나의 산책길이다. 유관순 열사가 만세를 불렀던 아우내 장터와 투옥돼 고문을 당하던 서대문감옥도, 경북 안동에 있는 이육사 문학관도 갔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여행 중엔 우수리스크 최재형고택과 이상설 유허비도 방문했다.

최근 심산 김창숙 선생(金昌淑,1879.7.10.~1962.5.10)과 관련된 글을 꼼꼼하게 읽었다.

선생을 '마지막 선비', '마지막 유림'이라고 부른다. 사실 나는 조선시대 이른바 '유교 탈레반'들의 '~척'과 사욕에 가득 찬 '선민의식'에 반감이 있다.

안연이 공자에게 인을 물었다.(顏淵問 '仁')

공자는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하루만이라도 사욕을 버리고 예로 돌아간다면 천하가 모두 인으로 돌아가게 된다. 인의 실천은 자기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겠느냐?"고 말했다. (子曰 "克己復禮為仁。一日克己復禮,天下歸仁焉,為仁由己,而由人乎哉?")

하지만 공자의 '인(仁)'에 어긋나는 사사로운 짓을 저지른 조선의 유학자들은 많았다. 입으로는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다섯 가지의 덕목(오상:五常),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말하면서도 권력과 물질 욕심으로 인해 신분을 나누고, 계급간의 종속관계를 타당화 시켰다. 아들과 형제, 조카를 죽인 왕들도 있었다.

그러나 김창숙 선생은 진정한 오상을 실천한, 존경받아야 마땅한 유학자였다. 단 한 점의 의혹 없이 평생을 독립운동과 민주화투쟁에 헌신한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할 정도로 인지도가 낮다.

수원시 장안구 천천동 성균관대학교 수원캠퍼스에 그의 동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수원사람도 많지 않다.

그런데 왜 수원과는 연관성이 없는 선생의 동상이 여기 있을까? 그가 성균관대학교의 설립자이면서 초대 총장을 지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산책길은 성균관대로 정했다.

종로에서 출발해 화서문과 화서역 지하도를 지나고 천천동 아파트 단지를 건너 성균관대로 가는 코스로 내 빠른 걸음으로는 약 한 시간 정도면 될 것 같았다. 그래 오는 길엔 오랜만에 인근에 있는 낮것상에 들러 칼국수도 한 그릇 하지 뭐.   

성균관대에는 성백원 시인이 근무한다. 오산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지난 2014년 명예퇴임한 후 근황이 궁금해 하던 차에 성대에 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청소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성백원 시인은 지난해 9월에 발행된 '한국시학' 가을호(63호) 대담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 "건강한 몸과 마음이 노년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데, 지금 하는 일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아주 효과가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가족이나 주변 분들이 말리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엔 "오히려 격려해 줬지요. 그 학교 동네에 사시는 지인이 저를 보고 놀라시더니 박수를 치며 칭찬해 주시는 바람에 조금 쑥스러웠던 적도 있었지요. 직업의 귀천이 많이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김창숙 선생 동상은 왼손에 지팡이를 짚고 오른 손엔 문서를 말아 쥔 채 결연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문서는 전국 유림대표들이 서명해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보낸 유림단진정서가 아닐까.

선생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서울로 올라가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을 성토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3.1 운동 후엔 유림단 진정서를 휴대하고 상하이로 건너가,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우송했다. 귀국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다가 제1차 유림단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참여, 의정원 부의장을 지냈으며 임시정부 내의 파벌 다툼을 조정하는 데 노력했으며 신채호와 협력해 독립운동 기관지 '천고(天鼓)'를 발간하기도 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 사건으로 체포돼 징역 14년이 선고됐고 혹독한 고문으로 두 다리가 마비되기도 했다. 비밀 결사인 건국동맹의 남한 책임자로 추대돼 경찰서에 구속되어 있던 중 해방을 맞았다.

6.25 전쟁 후 이승만대통령이 하야해야 한다는 경고문을 발표해 부산 형무소에 40일간 수감되기도 했고, 1952년 반독재 호헌 구국 선언을 발표했으며, 1959년 국가보안법 개악 당시 '망국의 법'이라고 비난하는 등 반독재 민주화 운동 행보는 계속됐다. 독재 권력은 세력은 선생에게 테러를 가하기도 했다. 선생은 1962년 5월 10일 별세했다.

평화는 어느 때에/실현 되려는가/통일은 어느 때나/이루어지려는가/밝은 하늘 정녕/다시 안 오면/차라리 죽음이여/빨리 오려무나-통일은 어느 때에

선생의 동상엔 이런 시도 새겨져 있다. 평화와 통일을 간절히 바랐지만 아직 통일의 길은 멀고 한 때 온풍이 불기도 했던 남북 사이엔 어느 때보다 강한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지역‧빈부‧노소, 심지어는 남녀 갈등까지도 존재한다. 평화가 오는 날, 선생이 진정한 영면에 드는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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