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욕심은 재앙이다

2021-02-15     편집국

붕어는 물만 있으면 살고, 소는 풀만 있으면 산다.

인간만이 밥 만으로 살수없다. 더 해서 욕심을 먹고 산다. 가져도 가져도 끝이없는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욕심으로인해 이웃을 해 하고, 전쟁을 일으켜 남의 나라를 멸 하고, 자원을 차지하기위해 아마존을 파괴하고 북극을 파 헤친다. 급기야 지구 자원이 고갈되고 인간 만이 아닌 애꿎은 전체 만물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신이 정해준 도를 넘은 인간의 과도한 욕심 때문이다.

불가(佛家)에서는 생명 하나 살리는 일이 천개의 불탑을 쌓는 일보다 낫다 하였다.

주위의 생명들은 하찮게 도외시하는 인간들이 제가 아플땐 돌 무더기 몇개 올려놓고 뻔뻔하게 살려 주십사 하고 목숨을 빈다.

그 옛날, 인도의 대상인 '유수장자'가 수십마리 코끼리 등에 상품을 싣고 산을 넘을때, 가뭄에 물이 마른 웅덩이를 지나는데 많은 물고기가 한켠에 몰려 바둥 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를 궁휼히 여긴 상인은 코끼리 등의 짐을 모두 풀고 산 아래로 도로 내려가, 하천의 물을 코끼리에 실어와 웅덩이에 부어 물고기 들을 살려 주었다. 하는것이 佛家에서 전해지는 방생(放生)의 시초이다.

바쁜길을 멈추고 값 비싼 비용을 치루면서도 미미할수 있는 하찮은 물고기의 생명을 구해준 이 일이야 말로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한 것이라 하여, 지금껏 불자(佛者)들 사이에서 살생(殺生)의 반대 의미로서 중요한 의식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숭고한 의미의 방생 의식도 인간의 욕심으로 더렵혀지고 있는 현실이다. 몇 몇 유명 사찰 등 에서 연못을 파고 물고기를 잡아 가두었다가, 방생 하는 날이면 봉지에 몇 마리씩 넣어 불자들에게 돈을 받고 파는 것이다.

맑은 물에서 가족과 잘 살던 물고기들을 그물로 생 이별 시켜 가둬 놓았다가, 돈으로 사서 물 설고 낯 설은 곳에 풀어주고 장한 일을 한듯 복을 달라고 비는 것은 부처님의 자비가 아니다.

본시 방생이란 자기 희생 이다. 생선이던 고기던 잡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그날 하루만큼 이라도 먹을것을 참고 생명을 살려주는 것이 방생의 참 의미 이다.

불자 들에게 완곡히 권한다. 근대 사회로 와서 방생의 참 의미가 이렇듯 훼손돼 버린 바에야 방생하는 대신 고기 안 먹는 날을 정함이 어떨지, 그날 하루만이라도 먹지 않는 만큼의 생명이 살아 남을수 있는것이 아닌가.

필자가 장황히 방생에 대해 논 하는것은, 인간이 먹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현대는 굶어 죽지 않기위해 무엇이던 잡아 먹었던 수렵시대가 아니다. 개 고양이를 먹고 박쥐를 먹는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정력과 건강을 키워 향락을 누려 보겠다는 인간의 또 다른 근거없는 욕심이 부른 무 자비한 살생(殺生)이기 때문이다.

상어 지느러미를 먹기위해 상어를 남획 한다. 눈 호강 하겠다는 욕심으로 코끼리를 죽여 상아를 뽑아간다. 인간의 사치스런 욕심으로인해 코끼리 또한 멸종위기에 처하고 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닌, 단지 입맛을 위해 일본은 국제 협약도 무시하고 고래의 씨를 말리고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2017년 발표한 멸종위기 생물 목록에는 26,000종 이상의 생물종이 멸종위기 등급으로 분류돼있다. 생물의 멸종이 가속화 되면 인류의 멸종도 피할수 없다. 자연의 이치다. 이 위기의 최대 위험 요소가 바로 인간의 욕심이다. 인간의 욕심만 제어 할수 있다면 이 아름다운 지구의 모든 생물종이 평화롭게 순환 하며 공생 공존 하고 오래 살아 갈수 있을 것이다.

색 다른 맛 찾다가 코로나19보다 더한 색다르고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또 깨워내지 말고,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욕심을 자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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